압구정 솔밤, 코리안 컨템퍼러리, 디너 코스

압구정 솔밤, 코리안 컨템퍼러리, 디너 코스

요즘 매우 핫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압구정 솔밤에 다녀왔습니다. 올 초부터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다가 이번엔 가야겠다 싶어 캐치 테이블을 통해 예약했습니다. 원하는 날짜에 대기를 걸어두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생겼더라고요. 이곳은 엄태준 셰프님의 레스토랑인데 식사 내내 음식도 직접 설명해주러 한 번씩 오시고 메뉴가 괜찮은지 체크하시는 등 굉장히 세심하게 테이블을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셰프님 말씀으론 9월 6일부터 신 메뉴로 리뉴얼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몇 가지 먹어보고 싶은 디쉬가 있었는데 사라져서 아쉬웠지만 제가 못 먹는 양갈비 대신 항정살이 생겨 또 반갑기도 했습니다. 디쉬가 꽤 많아 식사 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 3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거 같습니다. 디너 코스 가격은 1인 25만원입니다.

압구정 솔밤이 위치한 빌딩,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터프한 분위기인데 솔밤으로 들어가면 화이트 우드톤의 따뜻한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천장에서 테이블로 내려오는 조명이 디쉬를 더 예쁘게 보이게끔 만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이 제가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는 샐러드 보울에서 인테리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짜 매력적인 공간으로 잘 뽑아낸 거 같아 레스토랑 보는 맛도 있더라고요.

사이드에는 와인 세팅 테이블이 따로 놓여 있기도 합니다.

테이블에 앉으면 오늘 먹은 코스 요리 메뉴판이 이렇게 예쁜 솔방울과 함께 놓여져 있습니다.

티까지 포함해서 대략 15코스인데 식사하면서 대충 보니 4 디쉬당 약 한 시간이 걸렸던 거 같더라고요. 저는 임산부라 예약 때 미리 못 먹는 재료를 말씀드렸는데요. 전어는 새우로 참치는 관자로 대체해주시는 등 배려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코스 시작 전에도 한번 더 여쭤봐 주시더라고요. 솔밤은 다정, 섬세가 묻어나는 곳입니다.

코스 시작 전 솔밤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젓가락 고르기 시간. 핑크색 나무젓가락이 최고 인기가 많아 다 나갔다며 미리 고백해주시던 직원분. 젓가락마다 나무 재질이 다르니 색도 다르고 무늬도 달라 고르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가 고른 건 깨끗해 보이는 이 녀석.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식사하는 내내 요렇게 예쁘게 놓여 있다가 국수 먹을 때 잠깐 쓰임을 합니다.

첫 번째 아뮤즈 부쉬. 관자, 전어, 닭간.

x.o 소스가 들어갔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개인적으론 이 관자 튀김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솔밤은 와인 페어링이 8글래스로 되어 있더라고요. 남편 혼자 8잔을 페어링 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워 가볍게 영동 사과와인 한 잔 부탁드렸습니다.

전 마셔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남편 말로는 담금주 느낌이었다고 하네요.

밤, 캐비어, 하몽, 은행.

밤식빵과 함께 곁들여 먹을 크림치즈 베이스의 디쉬가 나왔습니다. 크림치즈 위에 캐비어, 무, 하몽 등이 예쁘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예쁜 화원을 보는 거 같기도 하고 솔밤은 이렇게 디쉬 하나하나 너무나 예쁘고 정성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셰프님이 미대 출신인가 잠깐 고민했었던 거 같습니다.

절반 정도는 이렇게 크림치즈와 부재료를 함께 섞어 먹고 남은 반은 밤식빵과 함께 곁들여 먹었습니다. 남편은 식빵이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는데 저는 빵 테두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빵은 좀 평범한 맛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이 크림치즈가 너무 고급스럽고 맛있어서 단독으로 먹는 게 훨씬 더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빵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뭔가 빵맛 때문에 고급스러운 디쉬에서 평범하고 흔한 빵맛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참치, 성게알, 김.

제 디쉬는 참치 대신 관자로 바꿔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론 관자로 바뀌어서 더 맛있게 먹었던 거 같습니다. 메추리알 위에는 훈연한 송어 알이 올려져 있었고요. 북해도 우니 디쉬에는 역시나 크림치즈에 시소 기름으로 마무리되어 있었습니다. 메추리알을 그릇에 넣고 꼼꼼히 잘 비벼서 김부각과 함께 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색 조합을 보고 비비면 좀 비쥬얼이 별로일꺼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쉬운 비쥬얼. 그래도 김부각이 두께감이 있어 좋았고 다소 느끼할 수 있는 걸 시소 기름이 잘 잡아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크림치즈 베이스의 디쉬를 두 번 연달아 먹으니 조금 느끼해지더라고요. 먹으면서 뭔가 앞과 이번 디쉬는 와인을 당기게 만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와인과 곁들여 먹으면 좀 더 맛이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 와인을 마실 수 없으니 이쯤 해서 진저에일 하나 부탁드렸습니다.

갑자기 큰 무 같은걸 하나 들고 오시더니 샐러리악이라며 보여주셨습니다. 다음 요리 주재료가 이 샐러리악이었거든요. 이렇게 큰 샐러리악을 볼 일이 없는데 진짜 깜짝 놀랐네요.

느끼해진 속을 달래줄 진저에일. 옥수수 빨대를 꽂아주셨고 컵 아래 코코넛 컵받침도 예뻤습니다.

샐러리악, 트러플. 솔밤은 오픈 주방이라 식사를 하면서 조금 멀지만 주방 내부를 볼 수 있는데요. 주방에서 샐러리악을 그릴 위에 훈연하는 모습도 알려주셔서 멀리서나마 볼 수도 있었습니다.

깨끗하면서 살짝 단맛이 있는 샐러리악과 트러플 퓨레를 함께 섞어 쿠키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됩니다. 트러플 향이 눅진하게 잘 올라와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운 요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치, 청어알 젓, 무. 비트 색이 유독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직원분께서도 정말 좋은 비트를 공수해와서 이렇게 내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스모키하게 훈연한 한치와 청어알, 청어알 젓을 섞은 요리. 그 위에 예쁘게 무와 비트가 데코 되어 있습니다. 아래부터 위까지 스푼으로 떠서 먹으면 되는데 감칠맛이 정말 끝내주더라고요. 국물 요리가 아닌데 마치 나가사키 짬뽕을 먹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철 생선, 전복, 고대미.

보면서 뭔가 개구리 연못 같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배추와 오만둥이를 함께 넣고 끓인 육수를 부어주니 정말 연못이 되었네요. 살짝 청양고추 오일도 동동 띄워져 있습니다.

금태 위쪽으로는 바삭한 퀴노아 튀김이 올려져 더 바삭한 식감을 살려주었고요. 오른편에 있는 가니쉬는 배춧잎 아래 고대미와 다진 전복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전복이 너무 잘게 다져 있어 살짝 아쉬웠지만 바삭한 금태와 함께 모두 곁들여 먹으니 깔끔하고 맛있었습니다. 금태는 일식집에서도 자주 접해서 좋아하는 식재료인데 역시나 이렇게 먹어도 맛있네요.

홍시, 배, 딜.

메인 디쉬들이 나오기 전 나온 클렌저로 상큼하고 개운한 느낌이었습니다. 솔밤으로 만든 화관이 너무 예뻐서 가져가고 싶더라고요. 진짜 솔밤 플레이팅은 하나하나 너무 예술입니다.

항정살, 갓.

동그랑땡 같은 비주얼의 항정살에 갓김치를 다져 만든 가니쉬와 돼지뼈와 마스터드 씨앗으로 만든 소스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됩니다. 항정살이 느끼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느끼하지 않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좋았습니다.

셰프님께서 갑자기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 안에는 오늘 먹을 88일 간 드라이에이징 한 투뿔 한우가 이미 잘 구워져 레스팅 중이더라고요. 상자를 서서히 여는데 훈연한 향이 테이블 주변을 퍼져 어찌나 괴롭던지요. 크게 잘라달라고 말하고 싶은걸 속으로 삼켰습니다.

우엉 가니쉬와 함께 먹는 한우 등심 스테이크. 레스팅 할 때도 훈연 향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 입 베어 물때도 그 향이 그대로 느껴지더라고요. 후각, 시각, 미각을 동시에 만족하는 그런 디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슨 소스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솔잎에 한번 발라 먹어도 간이 딱 좋았습니다.

남편은 파인 다이닝에서 나오는 스테이크에 대한 만족감이 낮은 편인데 솔밤 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스테이크 먹을 때 코스 내내 조용하던 뱃속의 아기가 두 번 발로 찼는데 아기도 맛있었나 봅니다.

코스 메뉴에 없던 시크릿 국수.

우엉으로 낸 육수와 튀밥이 목화솜처럼 올려져 있어 이 요리도 참 한국스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밤 젓가락은 이 디쉬에서 사용하면 됩니다.

레몬 버베나, 사과.

길었던 코스 요리도 어느새 끝나가고 디저트 순서만 남았습니다.

단호박, 트러플, 헤이즐넛.

가까이 보면 더 예쁜 단호박 무스 케이크. 부드러운 단호박 무스에 프랄린이 올려져 있어 식감과 달콤한 맛을 더했고요. 옆에 있는 건 트러플 소스인데 함께 곁들여 먹으면 좀 더 고급스러운 디저트가 되더라고요.

솔밤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솔밤 찻상이 나왔습니다. 오늘 티는 솔밤 시그니처인 솔잎차와 뽕잎차가 메인으로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제가 임산부라 솔잎차는 몸을 차 게하는 성질이 있다며 우롱차를 하나 더 준비해주셨었습니다. 원래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건데 선택지가 하나 사라지는 걸 배려 주시는 마음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준비해주신 세 가지 차를 모두 마셔볼 수 있었습니다.

예쁜 솔방울과 한 컷 더. 찻잔도 너무 예쁘고 차가 담긴 유리잔도 너무 예뻐서 정말 다 소장욕구가 들더라고요. 집에서 이렇게 마셔도 정말 좋을 것 같았습니다. 차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잎 거름망으로 한번 티를 걸러주시는데 그 퍼포먼스도 너무 자연친화적이고 좋았습니다.

마카롱, 까눌레, 초콜릿 순으로 마지막 디저트를 즐겨줍니다. 특히 초콜릿 먹을 땐 아기가 발로 한번 찼는데 초콜릿도 저희 아기 픽이네요. 달달한 디저트나 고기를 좋아하는 아기 입맛이 솔밤에서도 이렇게 드러납니다. 둘이 먹었지만 셋이 먹은 그런 느낌이라 식사 내내 즐거웠습니다.

마무리는 다시 부드러운 티를 음미하며 길었던 솔밤의 디너 코스를 마무리합니다. 여름 메뉴에서 가을로 넘어와 아쉽기도 또 한 번도 후기를 보지 못한 메뉴들이라 기대도 되었던 솔밤이었습니다.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단아하고 아름다운 정서가 느껴지는 디쉬들을 먹다 보니 12월쯤 다시 바뀔 겨울의 솔밤 기대가 되더라고요. 가을이 깊어지듯 오늘 먹은 이 메뉴들도 조금씩 더 완숙미를 더해질 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부디 출산 전 다시 한번 겨울 솔밤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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