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마리 유도분만 성공, 자연분만, 무통, 관장, 40주 2일 출산 후기

청담마리 유도분만 성공, 자연분만, 무통, 관장, 40주 2일 출산 후기

지금 생각해도 정말 힘들고 전쟁 같았던 나의 출산기를 드디어 써본다. 우리 아기는 S급 포지션으로 골반에 이미 자리를 잘 잡았다고 칭찬받은 아기였다. 머리 크기도 체중에 비해 매우 작은 편이었고 내 속골반도 괜찮았기 때문에 자연분만하기 너무 좋은 조건이라고 하셨다. 문제는 초산이라 나의 자궁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진료 때마다 원장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던지. 3.1kg였던 아기 체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고 3.5kg이 넘으면 분만 과정이 너무 힘들어진다며 유도분만을 권유받았다. 자궁문이 언제 열리나 이슬은 언제 비치지? 매일같이 운동하고 짐볼을 탔지만 유도분만 당일까지도 너무나 평온했던 나의 자궁. 유도분만 당일 이슬이 비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캐리어를 끌고 새벽 6시 청담마리로 향했다. 아, 참고로 유도분만을 하려면 자정부터는 물 한 모금 마시면 안 되고 철저히 금식을 해야 한다.

5층 분만실에 도착하여 유도분만 관련 시 진행되는 무통 주사, 분만 과정에서의 남편의 참여 등 여러 가지를 묻고 지정된 가족분만실로 안내받았다. 청담마리는 가족분만실에서 분만과정이 모두 진행이 된다. 분만실은 간호사분께서 조도를 낮추어 주어 자궁문이 모두 열리는 내내 굉장히 아늑한 분위기였는데 무통을 끄고 힘주기 과정이 진행될 때는 그냥 전쟁터 그 자체였던 걸로 기억한다.

오른쪽 작은 옷장에 짐을 두면 되었고 오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출산이 임박할 때쯤 갑자기 간호사분이 usb를 가지고 오더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틀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진짜 그땐 배가 너무 아프고 죽을 거 같고 아직 더 힘줘야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노래를 틀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진짜 이게 유튜브에서 보던 그건가? 너무 고통스럽고 아픈 와중에도 헛웃음이 나고 믿기지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유도분만은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느냐에 따라 진행과정이 다른데 나처럼 1cm 정도 열리고 경부가 단단한 산모는 질정제를 넣어 자궁경부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과정부터 진행한다. 질정제를 넣기 전 관장도 진행했는데 10분 참으라고 하셨지만 6분이 나의 한계였다. 그리고 저 수액 바늘 게이지가 커서 아프단 후기가 있었는데 의외로 난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무통관 삽입할 때가 훨씬 아프고 찌릿찌릿한 느낌이라 이게 더 아프다고 말씀드렸더니 무통관을 삽입하시던 마취 과장님이 팔에는 생바늘을 꽂는 거고 무통은 마취하고 놓는 건데 어떻게 이게 더 아프냐고 믿을 수 없단 듯이 말씀하셨다. 

수액이 들어가는 중. 새벽 당직이셨던 원장님이 내진 후 질정제를 넣고 가셨는데 보시더니 오늘 안에 나오겠네! 이러고 가셨다. 어떻게 아시는 걸까? 정말로 오늘 안에 아기가 나오긴 했다. 매우 늦은 밤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 아무튼 질정제를 넣고 한 시간 정도 간격으로 간호사분이 내진하시고 화장실 가고 이 과정을 반복했다. 문제는 화장실 갔다가 이슬이 터진 줄 알고 말씀드렸더니 질정제가 빠졌단다. 다행히 진통이 걸린 거 같긴 해서 이 상태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이것 때문에 분만 과정이 좀 더 느려졌던 거 같긴 하다.

경부야 부드러워져라! 자궁문아 열려라! 를 반복하며 무한 기다리는 중. 나름 평온하다. 자궁문이 적게 열릴수록 내진을 해도 그리 아프지 않고 자궁수축 강도가 높아도 크게 아프지 않았다. 이 말은 무통 주사는 아직 멀었단 소리인데 무통 맞을 정도가 되면 정말 아파서 말도 안 나온다고 간호사분이 말씀하셨다. 오후쯤 되어 내 담당의였던 현민경 원장님이 오셨는데 3cm정도 열리면 무통을 주신다고 하셨다. 나이스.

 

남편이 배 위에 집에서 데려온 시바 인형 두 마리를 올려주었다. 자궁문 열리는 과정에선 마음의 평화와 위안이 되었던 귀여운 녀석들.

수액이 들어가면서 점점 붓기 시작하는 나의 손과 팔. 밤늦게까지 분만 과정이 진행되면서 수액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나중엔 정말 말도 못 하게 부어있었다. 임신 때 거의 붓지 않았던 내 손이 이 수액 덕분에 손등 뼈가 사라지도록 부었다. 

이제 나도 슬슬 배가 아프다고 느낄 때쯤 무통 테스트 해주신다고 맛보기로 무통액을 넣어주셨는데 진짜 고통이 싹 사라졌다. 나는 무통이 정말 잘 받는 케이스였는지 살짝만 들어가도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오히려 무통관을 삽입할 때가 제일 아팠다는. 대신 무통액이 3시간 이상 들어가니 점차 하반신이 얼얼한 기분이 들었고 가슴 주변이 간지러웠다. 이런 부작용은 무통 주사 신청할 때 모두 안내받은 사항이다.

오후 2시쯤부터 저녁 7시까지 무통액을 맞으며 자궁문이 열리길 기다렸는데 자궁수축 강도가 세져도 크게 아프지 않다 보니 꽤 지루하기도 했다. 다른 분만실에서 터져 나오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까? 이 생각을 하다가 내진을 받고 화장실 다녀오길 수차례 반복했다.

아무튼 무통액이 들어가면 정말 진통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통 천국은 존재합니다.

이 긴 유도분만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며 점점 지쳐가는 나의 남편. 힘주기 과정도 옆에서 함께 하며 정말 많이 고생했다. 평생 까방권 적립 중.

청담마리에서 분만하는 동안 남편 식사는 다인실에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남편이 먹고 찍어 왔다.

내 분만 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저녁까지 두 끼를 다인실에서 먹고 온 남편. 남편이 저녁까지 먹고 왔지만 나의 자궁문은 매우 더디게 열리고 있었고 촉진제를 사용하면 자궁수축이 풀리지 않아 아기에게 너무 큰 부담이 갔다. 결국 촉진제 없이 내진으로 자궁문을 서서히 열다가 밤 당직이셨던 배희영 원장님이 그냥 내진으로 남은 문을 다 열어버리시는 기적을 행하셨던 걸로 기억. 그다음부터는 무통 주사 끄고 무한 힘주기를 반복했는데 이 과정이 정말 생지옥 그 자체였다. 생진통이 그대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데 숨을 최대한 참고 길게 힘을 제대로 줘야 진통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과정을 한 시간 넘게 반복하다 보니 얼굴은 땀범벅이었고 정말 눈물이 그렁그렁, 고통에 몸부림친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절절히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배 아래에서 신속하게 수술 준비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현민영 원장님이 퇴근하셨다 분만을 위해 돌아오셨는데 무슨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고 힘나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와 동시에 자궁수축이 오는 순간 옆에선 간호사분들이 내 배를 사정없이 밀면서 힘주세요!! 를 외치셨다. 조금만 더를 몇 번 반복했는데 수술 준비 때 잠깐 나가있었던 남편과 간호사분이 usb를 가지고 들어오는 게 얼핏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 노래가 나오면 아기가 나온다는 소리인데! 아기가 나온다고? 힘을 너무 많이 주면 얼굴에 핏줄이 터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터지든 말든 힘을 줘야겠단 생각에 온 힘을 다 짜내길 몇 번 반복하다 갑자기 힘을 빼라는 얘기가 들리더니 미끄덩! 뭔가가 쑥 하고 빠져나갔다. 남편 말로는 노래가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은~ 할때쯤 아기 머리가 나왔고 사랑받기 위해~ 할 땐 이미 아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 뭔가가 바로 이 녀석. 응.애! 한번 울고는 너무 조용히 내 품에 안겨있어서 순간 난 아기가 잘못되었나 걱정이 되었다. 분만 영상을 보면 아기들이 엄청 울던데 우리 아기는 정말 응애! 이러곤 미동도 없이 내 품에 안겨있었기 때문. 보통 아기를 보면 불타는 고구마 같다고 그러는데 나는 아기가 너무 까매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 심지어 초음파에서는 3.2kg라고 했는데 낳아보니 3.5kg였다. 처음 보는 아가라 그저 작다고 생각해서 엄청 작아요! 이랬더니 원장님이 아기가 커요... 라며 정정해 주셨다.

분만 전쟁이 끝난 후 1시간 동안 가족분만실은 회복실 역할을 했다. 아기가 나오고 다시 바로 무통을 넣어주었지만 회음부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데 난 이게 너무 아프고 다시 분만 과정을 겪는 것 같이 불편했다. 아기가 나오면 전혀 아프지 않다는데 난 아기를 보면서도 회음부 봉합 부위가 너무 신경 쓰이고 아팠다. 그리고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내려오고 다음날 알았는데 힘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온 얼굴과 몸에 있는 실핏줄이 다 터지고 눈에도 핏줄이 터지는 등 분만의 흔적은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아기를 낳고 회복을 하고 출산기를 쓰는 순간이 온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다. 임신을 하면서 당연히 자연분만 하나만 생각했고 초산 유도분만은 제왕절개로 갈 확률이 높아 너무 걱정했다. 생략된 일이 많지만 응급제왕의 문을 열지 않고 바로 코 앞에서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유도분만은 정말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남들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거나 괜찮을 거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끝까지 자연분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의료진분들과 긴 분만과정을 잘 참아준 기특한 나의 아기 그리고 신이 도왔단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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